

안녕하십니까, 제134회 최종 합격한 발송배전기술사 이**입니다.
현재 글로벌 엔지니어링 회사 WSP 더블유에스피아시아리미티드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본사에서 사업 검토, 인허가, 설계검토 DR, 공사비 검토, VE, OE, EPC 입찰 시공사 선정, SDD, PDD, 사업 진행, 공사감독 등 건설사업관리 CM업무 등을 담당하고 있으며 현장에서는 시공감리 CS 업무 등을 합니다. 현재 주요 프로젝트로는 154kV, 9.6km 2회선 지중송전선로 건설 사업 관리와 80MW 데이터센터 프리콘 업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발송배전기술사?
처음 기술사 공부를 시작할 때, 잘 모르는 입장에서 전기를 공부하면서 건축전기설비기술사와 발송배전기술사 중 고민이 있었습니다. 발송을 선택한 이유는 발송이 건축보다 원리적이라고들 했고, 당시 주 업무가 발전기였기 때문입니다. 발송배전기술사 공부는 잠실 대한전기학원이 좋다길래 일단 등록하여 시작하긴 했으나 확신은 없었습니다.
기본서를 들으면서 전상영 박사님과 최상균 교수님 말씀을 통해 간접적인 경험을 많이 하게 되었고, 이 쪽 판은 이렇게 돌아가는구나. 여기서 중요한 기술은 무엇이고 이론적으로 이 부분을 내가 잘 알고 있어야 하는구나. 실무에서는 이 부분이 이렇게 쓰이는구나 등을 배워 나갔습니다.
전기 분야로 옮겼지만 어떤 모습으로 내가 남을지,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서 (본인은 잘 모르시겠지만) 기본서 최상균 기술사님 강의를 들으며 기술사님의 마인드, 철학, 태도 등을 통해 전기쟁이로 사는 것도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 기술사님처럼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으로 본격적으로 엔지니어의 삶을 결심한 것입니다. 지금도 나의 걸어간 발자국이, 혹시나 누군지 모를 뒤에 오시는 분에게는 큰 의미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늘 열심히 멋있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발송배전기술사 공부를 시작하면서
발송배전기술사 준비 관련해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대한전기학원 발송배전기술사 수업을 2013년 기본서 1번, 2016년 기본서 1번, 논술 1번 들었습니다. 그리고 2019년 연구반에 등록한 후, 1년 정도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지 말지를 탐색하였습니다. 실질적으로 본격적으로 시작하면 멈출 수 없을 것 같고, ‘고시폐인’처럼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발송배전기술사 공부에 대한 계획을 세운 시기는 2011년으로 기억합니다. 처음부터 공부를 본격적으로 한 것은 아니고, 주말에 시간을 내어 학원 수업만 들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경제적, 시간적, 정신적 여유도 없었지만 ‘기술사’라는 장기계획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 번 듣고, 몇 년 지나서 여유가 되면 듣고, 또 몇 년 지나 듣는 식으로 기회가 되면 학원 수업이라도 일단 들으면서, 어쩌면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이 쪽 근처에 머물며 떠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습니다.
가끔씩 시간이 생기면 전기 기본, 전기수학 등을 보았습니다. 다행히 대학교 3학년 때 전기공사기사2급(산업기사)을 취득하면서 기본 개념은 공부했었고, 대학원에서 경제수학을 공부했기 때문에 수학 개념을 이해하는 것이 많이 어렵지는 않았으며, 일종의 워밍업 시간이었던 듯합니다.
하지만 코로나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연구반 학생들 합격해서 나가는 걸 보고 할 수 있겠다 판단이 들면서, 2021년 1월부터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2021년 1월 1일부터는 하루 최소 1시간 이상씩 공부했으며 실제 4시간 이상씩 제대로 공부한 시기, 즉 실질적으로 기술사 공부를 했던 기간은 2021년 1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정도입니다.
본격적 공부 돌입, 스터디를 강력 추천합니다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한 지 반 년 후, 연구반 내 스터디에서 참여 요청이 들어와 합류하게 되었습니다. 스터디 멤버가 좋아 같이 공감하고 공부하는 시간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주말 아침 8시에 모여 1교시 시험 보고, 점심 먹고, 2교시 시험 보고 서로 돌려가며 철저히 채점하고, 평균 점수 내고, 점수별로 카톡 통장에 벌금 내고, 토론하고, 자료 공유하고, 저녁에 또 책 보고, 시험 전에는 예상문제 몇 개씩 뽑아서 정리한 후 시험 끝나고 적중하면 상금도 받고, 시험 끝날 때마다 비싸고 맛있는 곳에서 밥도 먹고, 술도 많이 마셨습니다. 재미있는 시간이었으며 나머지 2막 인생의 동료들을 만날 수 있어 발송배전기술사 자격만큼 제게 큰 자산입니다. 스터디 합격률이 좋아 지금까지 발송배전기술사 합격자 6명 정도 배출하였고 계속 실력 있는 선수들로 구성 및 충원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있기에 기술사 공부와 별개로 각 분야에 궁금한 점이 있을 때 편하게 바로 물어볼 수 있고, 저 또한 제 전문인 EDG(Emergency Diesel Generator)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바로 알려 주는 등 실질적인 전문 정보를 서로 나눌 수 있어 업무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진정으로 이해해 줄 수 있는 소중한 동료들이며, 지역부터 직업, 나이, 성별 모두 다르지만 다들 좋은 사람들로만 구성되어 잘 생활하였습니다. 학원이나 스터디는 가치 있는 자료의 공유 측면에서도, 본인의 수험생활 관리를 위해서도, 공부하고 있는 방향이 올바른지 계속 체크하기 위해서도 매우 유용하므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6개월만에 50점대로 점프하다
제일 중요했던 것은, 본격적으로 결심하고 시작했을 때 자발적으로 기술사 답안지 노트를 매주 한 권씩 써서 연구반 김진혁 교수님께 9주 연속 제출했던 기억입니다. 김진혁 기술사님은 내용 하나씩 모두 코멘트를 해 주셨고 이 때 기본 문제가 정립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공부 초기에 절대적 시간 투자가 필요하고, 이 시간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연구반 공부를 시작하면서 저는 처음부터 김진혁 교수님을 전문가로 믿고, 그저 김진혁 교수님이 시키는 그대로 무조건 하였습니다. 그리라고 하는 그림, 적으라는 수식, 쓰라는 내용 등을 철저하게 따라서 그대로 하다 보니 6개월 만에 50점대로 바로 올라올 수 있었습니다. 주말마다 김진혁 교수님과 호흡하면서, 서로 신뢰하며 매주 엄청난 답안을 쓰고 교정을 받으면서 공부하던 좋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마지막 1-2년은… 주말에는 종일 공부했습니다. 토요일에는 학원, 일요일은 스터디와 도서관으로 종일 공부했습니다. 주중에는 퇴근 후 아파트 단지 스터디카페를 등록해서, 집에서 공부방 들어가듯이 집에서 밥 먹고 바로 공부하고, 잘 때만 안방에 들어가는 생활이었습니다. 기분전환이 필요할 때는 가끔 주말 아침 일찍부터, 스타벅스 등 카페에 아이들까지 온 가족이 함께 큰 테이블 잡아 같이 공부하기도 했고 정말 하기 싫을 때는 하루 20개씩 답안을 작성하여 같이 공부하는 분과 숙제하듯이 사진으로 검사하며 공부하기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답안 구성에 ‘대칭좌표법’ 원리를 활용
답안 구성은, 우리가 배우는 대칭좌표법의 원리를 이용하였습니다. 한 주제에 대해 매번 한 번에 쓰려면 힘들고 진도도 나가기가 쉽지 않지만 비대칭분, 분해, 재구성하는 방식과 같이 개념, 모델, 그림, 수식, 장단점 특징, 필요시 결론 순서로 구성하여 각각 공부하며 돌리면서 앞글자 약 500여개 총알을 준비하여 필요한 곳곳에 적절히 사용하는 방식을 적용하였습니다.
기본서반을 들을 때, 최상균 교수님께서 “쓸 것 없으면 결론에 이용할 수 있는 문구를 미리 준비해서 사용하라” 하셨던 적이 있습니다. 그 말씀을 기억해서, 문구를 어떻게 준비하고 효과적으로 인출할지를 고민했습니다. 당시 연구반 초기 10명 멤버가 찾은 해법은 10개씩 총 100개 앞글자 만들기 였습니다. 그 때 멤버 절반은 현재 합격해서 나간 상태입니다. 저는 혼자 이 100개 앞글자를 기본으로 수정 및 추가하면서 500여개로 확장했고, 이 텍스트파일을 음성파일로 바꾸어 매일매일 계속 반복적으로 들으면서 어느 순간 15분이면 전체적으로 머리 속에서 내용을 한 번 돌릴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현장에서 시험 문제를 처음 봤을 때, 이 문제에는 어느 정도 수준으로 쓸 수 있겠다 파악하여 문제를 선별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었습니다. 혹시 전체가 정확히 생각나지 않더라도 일단은 답안을 구성할 수 있고, 어쨌든 비슷하게 내용을 쓸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처음에는 모든 내용을 다 이해하고 만들어 시작하지 않더라도 시간이 지나다 보면 이 부분이 이런 내용이었구나 이해가 되고, 이 부분은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었구나 하는 과정을 합격할 때까지 계속 거치게 됩니다. 이런 점에서 일단 어떤 형태로 정리되어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당시 만들었던 서브노트와 앞글자 파일은 공부의 흔적이자 큰 자산인데, 주위 너무 많은 분들이 달라고 하셔서 어떤 방식으로 공개할지 고민 중입니다.
연구반, 총무 합격 릴레이는 계속된다!
기본서 수업 중 최상균 교수님께서 “어느 순간 송전, 배전, 계통이 매트릭스가 된다”고 하셨는데,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그런데 정말 눈이 떠지고 나니, 전체가 보이기 시작하며 맥이 보이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험과는 별개로 이제는 전기가 내 지식이 되는 느낌과 더불어, 기술에 대해 공부한 보람이 컸습니다. 사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나 이것저것 많이 알아요’ 수준을 넘어서, 고득점을 위해 채점자의 기준에서 볼 때 답안을 어떻게 구성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런 답안을 위해 사전에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이것을 깨달을 때까지 시간이 필요하고, 깨달은 순간부터 ‘진짜’ 기술사 공부가 시작된다고 생각합니다.
발송배전 분야의 문제가 계속 확장되거나 새로운 것이 엄청나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하나씩 하나씩 내가 소화하고 정리하여 정복하고 계속 반복해 나가면 6문제 중 6개를 내가 선택하여 고를 수 있는 시간이 오고, 그 때까지의 시간이 필요할 뿐 결국 ‘시간은 나의 편’이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합니다.
저는 학원에서 교수님들을 찾아뵙고 자주 상담하는 유형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김진혁 교수님은 매주 제 답안을 보시며 한 주 동안의 공부 상태나 방향성이 바로 갈 수 있도록 지도해 주셨습니다. 전상영 박사님은 중요한 시기마다 한마디씩 고마운 말씀과, 추운 겨울 일요일 아침 일찍 나와 빈 강의실에서 혼자 공부하고 있을 때는 따뜻한 커피와 항상 힘내라는 문자로 격려해 주셨습니다. 필기부터 면접까지 공부하는 과정에서 논술반 송재준 교수님, 면접반 허정우 교수님을 만난 것도 정말 행운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학원 관계자분들도 항상 친절하게 지원해주셔서 고마웠습니다. 모두들 제게는 인생에서 매우 고마우신 분들입니다.
일부러 다른 학원은 가지 않았으며 한 곳에서 끝내고 싶었고, ‘족보’를 더럽히는 것보다는 잠실 대한전기학원 순혈 족보로 만들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직장이 바뀌었을 때도 학원은 그대로, 매주 잠실에 와서 수업 듣고 석촌호수 돌고 총무도 하면서 공부했습니다. 기술사 준비 기간 동안 제게는 대한전기학원 이곳이 제 생활의 중심이었으며 정신적 베이스캠프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특히 연구반에서 ‘총무’ 역할은 다들 공부하는 것만으로도 신경쓰이는 상황이므로 선뜻 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저는 연구반 선배님들 합격해서 나가시는 것을 계속 보면서 연구반에 대한 애착, 배움에 대한 감사함, 김진혁 교수님에 대한 믿음과 봉사심으로 활동하게 되었습니다. 가끔 귀찮을 때가 있던 것은 사실이지만… 원래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반장 회장 서기 등은 수업 진도를 알아야 하기에 수업 과정을 잘 따라가고 공부를 더 하게 된다는 경험을 했고, 잠실 연구반 총무들은 다 합격해서 나간다는 속설도 일부러 믿었고, 저도 그 중에 하나가 되면 시간이 지난 후 재미있을 것 같아 열심히 활동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도 연구반 총무 합격 릴레이를 이어가게 되어 뿌듯합니다.
1차 합격 발표의 순간
시험 전날 금요일 새벽에 아버지께서 쓰러지신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오후에는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옮기셨지만, 코로나로 출입도 안 되고 아버지는 깨어나지 않으시고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다음 날이 시험이었는데, 결국에는 시험을 보러 갔습니다. 아버지께서 깨어나셔서 혹시나 “너 시험 안 보고 뭐했냐” 하시면 드릴 말씀이 없을 것 같아서, 당연히 준비한 시험을 보러 가야 했습니다. 1, 2교시 손이 떨려 어떻게 썼는지 모르겠고 점심 때 핸드폰 전원을 켜서 혹시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지 확인하는데, 그 때는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심지어 지나고 보니 그 회차에는 합격자를 한 명도 뽑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 때 점수 50점 후반대였기에, ‘시간 문제일 뿐 이 시간은 분명히 끝난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버틸 수 있었습니다.
최종 합격은 아버지가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2024년 6월 아버지 돌아가시고 일주일 후 1차 합격자를 발표하였는데, 그때 저는 아버지 상 치르고 심리상태도 좋지 않았고 마지막 아버지 병원에 계실 때는 학원 수업도 중단했고 합격에 대한 기대도 전혀 없었던 시점이었습니다. 그 때 1차 필기 합격 소식 카톡을 보자 순간 눈물이 흐르며 일주일만 더 계셨으면 하는 원망과 후회, 기쁨 등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사실 아버님이 한전 출신이셔서 발송배전기술사 자격을 알고 계셨고, 평소에도 "너 힘들지만 잘 해놓으면 다음에 괜찮을 거다" 하셨습니다. 공부하면서 항상 수험생활 끝내면 아버지 모시고 맛난 것 좋은 곳 모시고 싶었는데, 하필 공부 마지막 시기와 아버지 투병 시간이 겹치면서 자주 찾아 뵙지 못하고 결국 자욕양이친부대(子慾養而親不待)라는 말을 저도 피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하늘에서 다 알고 계실 거라 혼자 위안하며, 자격증 나오자마자 가족 모두 데리고 장인어른 추모관과 아버지 산소 앞에 합격증 보여드리며 술 한잔 따라 올렸습니다.
합격의 마지막 관문, 면접
1차 필기 합격 후 기분이 좋았지만, 면접은 차분히 준비하였습니다. 하지만 면접 불합격은 의외로 충격이 컸습니다. 전반적으로 분위기도 좋았어서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고, 평소에도 PT 나 발표, 강의 등을 자주 해왔기에 정말 놀랐습니다.
면접 불합격은 생각보다 큰 스트레스입니다. 1차 필기는 대부분이 탈락하시기 때문에, 다음에 잘해보자 마음먹을 수 있지만 일단 필기 합격한 후 한껏 올려진 기분에서 다시 바닥으로 내려가고 완전히 끝난 것도 아니고 1차 때의 조급함과 막연함은 계속 지속됩니다.
면접시험 실패에 대한 가능성과 정신적 준비가 필요합니다. 면접 합격률 40~50%라 하더라도 어쨌든 1차를 통과한 선수들이기에 절대 만만하지 않고, 모두 다년간 업무 경험에 의한 업력, 면접 자체의 노하우, 기본개념의 암기 등의 내공이 있습니다. 주위에 의외로 면접시험에서 몇 번의 시간이 걸리는 분들이 많으시고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운에 많이 좌우하기에 결과를 받아들이고 다시 준비하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133회 필기 합격자들은 1차 면접에서 절반 정도가 나가셨고, 남은 인원 중 이번에 면접시험 2차에서 저 혼자만 합격하였습니다. 다음번에 남은 분들 모두 나가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아내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으로 달리기 전에는 아들 둘이 어려서, 캠핑도 가고 주말마다 할 수 있는 건 다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기술사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가족이기에, 메인은 가족이고 서브가 공부로 적절히 시간 투자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해외여행이나 장시간 여행은 같이 할 수 없어서 늘 미안했습니다. 그동안 고대하던 이런 날이 결국에는 왔고, 가족들과 부모형제와 지인들에게 차근차근 인사도 드리고 갚아야 할 빚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직업과 생활 환경을 완전히 바꾸고, 마음고생에 독박 육아에… 고생 많이 시켜 와이프에게 제일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항상 합격할 거라 믿어주고 묵묵히 지원해주고 기다려준 아내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지금도 시험날 싸준 도시락은 너무나 잊혀지지 않고 마음속 깊이 고마움으로 남아있으며, 남은 인생 정말 잘 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엔지니어로서의 삶에서 ‘기술사’라는 자격증은…
처음에는 엔지니어로서의 정체성이 없어 스스로 혼란스러웠으나, 지금은 제 자신을 엔지니어라고 생각하고 살고 있습니다. 저는 전기 전공자가 아닙니다.학부와 대학원에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경제학 석사로 대외경제정책연구원에서 근무를 시작하여 여의도에서 자산운용사, 투자자문회사, 개인 투자사무실 운영 등 펀드, 자산 운용 업무를 하였습니다. 투자 환경 변화로 펀드를 해산하고 모니터상의 숫자나 선물이 아닌, 무겁고, 만져지고, 땀이 나는 현물을 다루는, 몸으로 뛰는 직업으로 인생 전환을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저를 증명해줄 수 있는 것은 자격증 뿐이었으며 전기 분야에서 일하기로 마음먹은 후 원래 일하던 곳으로 출퇴근하고 싶어 여의도에 사무실이 있다는 이유로 발전기회사가 마침 선택되었습니다.
맨 바닥부터 시작하다보니 서럽고 자존심 상하고 보수도 너무 작고 월급이 안 나올 때도 있고 전국 곳곳의 제일 깊은 컴컴하고 습한 지하 발전기실에서부터 먼지나는 건설 현장… 건축물, 빌딩, 아파트 시공 현장, 군부대, 호텔, 전산센터, 발전소, 병원 및 현장설명회 등을 운전하고 돌아다녔습니다. 견적부터 시작해서 TBE, 입찰, 계약, VP, 구매, 해외검수, 제작 FAT, 공장 검수, 공인검사, 설치 시운전, SAT, 사용전검사, 기성업무, 대관업무, 직원 교육, PM업무 등 모든 업무를 수행하면서 낮에는 현장, 공장, 영업, 사업관리 밤에는 이론 공부, 주말에는 학원 수업 등 엄청나게 공부하면서 필드 경험과 엔지니어링, 이론적 배경지식 및 경제학 전공자로서의 영업적 마인드까지 포함하여 능력이 폭발적으로 크게 향상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또한 네이티브 정도급은 아니지만 나름 강점인 영어업무능력은 사업 범위의 확장과 상대하는 파트너와 회사 등의 수준 변화와 새로운 기회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어느 순간 내가 기술적으로 더 많이 이해하고 더 많이 알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조금씩 이 분야의 전문가로 인정받으며 더 큰 회사로 스카웃되고 해외플랜트사업에 진출하여 미얀마, 인도네시아, 중국, 우즈베키스탄, 두바이, 카타르, 쿠웨이트, 이라크 등 코로나 전까지 많은 해외현장 출장 업무를 하였고 이란은 2번이나 가는 등 다양한 경험뿐만 아니라 시장과 사업, 기술에 대한 세계적인 안목을 기를 수 있는 시기였습니다. 이렇게 발전기 사업의 전문성을 인정받아 지금은 세계 엔지니어링 1위 글로벌회사에서 근무하며 건설사업관리 CM 업무 및 시공CS 업무를 담당하고 있으며 요즘은 외국회사에 근무하다 보니 오히려 해외에 나갈 일이 없기도 합니다. 저만큼 청계천 3kW 작은 것부터 시작해서 임대발전기, 빌딩, 아파트, 데이터센터, 엔지니어링 들어가는 해외 복잡한 플랜트, 원자력발전소 및 BSDG까지 다양한 프로젝트를 모두 경험한 사람을 국내에서 찾기가 힘듭니다. 어려워서 이곳 저곳에서 일당백으로 닥치고 부딪쳤던 것들이 오히려 어느새 지금은 소중한 기회였고 큰 자산이 되었습니다.
1차, 2차 하청의 조그만 회사 직원으로 시작해서, 처음에는 일반 건설사 전기부장도 만나는 것도 힘들었는데 지금은 시공사 팀장이 내 승인에 목 매달고… 내가 감리단 감리이고 단장이며 그 위 건설사업관리를 하고 있으니 제일 밑바닥에서 엄청나게 수직상승한 셈입니다. 역설적으로 각각의 위치, 갑을 관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공감하기에 항상 전체적으로 합리적으로 판단하려고 노력합니다. 그래서 누군가 영업직원이나 시공사 직원이 내 사무실에 들어오시면 그 마음을 제가 알기에 제가 먼저 커피도 타주며 잘 해주려 합니다.
지금도 생생한 기억이 있습니다. 일하기 시작하고 일주일 정도 지나 기술부에서 만들어준 제작승인서를 가지고 감리단에 사무실에 제출하러 갔다가 70대 전기 감리분이 승인서 서류를 제 얼굴에 던져버리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주섬주섬 주워 사무실에서 와서 봤더니 제가 봐도 너무나 엉망이었고, 자존심이 정말 상해서 사무실로 돌아와 바로 PC에 캐드 깔고 그날 저녁부터 직접 제작승인서, 설계 및 VENDER PRINT 배워가며 만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시방서를 세세히 공부하게 되고, 공장 내 발전기 파츠와 판넬들을 직접 보고 생산, 품질 검수하면서 전기, 발전, 보호, 및 전력기기 등을 정확히 확실히 이해하고 Documentation를 하다 보니 해외 플랜트 영문 RFQ도 공부하게 되고, VENDOR 등록도 안 되었는데 EPC사의 해외프로젝트에 견적을 계속 내주고 자료를 주다 보니 결국 벤더로 등록되고 대기업들만 참여하는 해외 및 대형 사업에도 입찰 기회를 만들고 노력하여 수주하고 PM으로서 일하다 보니 또 그 기회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운이 좋게 현재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기술사가 대단해 보일 수는 있으나 어쨌든 자격증일 뿐입니다. 일단 현재 주어진 일에 감사해하고 열심히 최선을 다하며 자신을 계속 발전시켜야 기술사로서뿐만 아니라 자신의 본질적 가치가 커진다 생각합니다. 지금도 힘들게 기술사를 준비하시는 분들에게는 뭔가 “난 이렇게 엄청나게 고생해서 기술사 합격을 했다”가 아닌, 사람마다 현재 처해진 상황과 특성이 다르기에 이런 경우도 있다는 것 정도로 참고해주시고, 계속 힘내시고 작은 이슈에 흔들리며 쫓아다니지 말고 기본에 맞추어 매일매일 묵묵히 전진하신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이 글을 쓴 이유입니다.
또한 평생 엔지니어링 분야에 계시는 분들 중 기술사에 대해 고민 중이신 분들께, 엔지니어의 한 사람으로서 말씀드리면 이 분야에서 자부심을 가지고 일하는 이상 마지막 최고의 단계인 기술사라는 자격은 인생에 있어서 정말 한 두 번은 승부를 봐야 할 도전 중 자신을 증명할 수 있는, 충분히 그 가치가 있는 선택이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게는 발송배전기술사를 준비하고 도착하는 여정이, 이 분야에서 뿌리를 내리고 한 단계 한 단계씩 올라가고 나를 증명하고, 또한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또 하루를 살아가게 하고 어려운 시절 나를 버티게 만들고, 또 다른 시작을 위한 디딤돌을 놓는 시간이었듯 지금 이 시간도 자신을 희생하면서 노력하시는 분들께는 분명히 좋은 결과를 확신하면서 마음속 깊이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